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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라마》 감독의 세계관|《드림 시나리오》와 트롤리 딜레마가 던지는 같은 질문

asnormal 2026. 9. 14.

《더 드라마》 감독의 세계관|《드림 시나리오》와 트롤리 딜레마가 던지는 같은 질문

영화 《더 드라마》를 보고 나면 이상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남습니다.

“실제로 저지르지 않은 일에도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할까?”

엠마는 10대 시절 끔찍한 일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엠마를 과거의 ‘계획’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크리스토퍼 보글리(Kristoffer Borgli) 감독의 전작 《드림 시나리오》에서도 이와 아주 비슷하면서 정반대인 질문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폴은 다른 사람들의 꿈속에서 끔찍한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두 영화를 나란히 놓으면 크리스토퍼 보글리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주제가 보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한 사람을 판단하는가?

 

행동일까요?

의도일까요?

결과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일까요?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누구인가?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노르웨이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입니다.

《시크 오브 마이셀프》, 《드림 시나리오》를 거쳐 《더 드라마》까지 독특한 블랙코미디와 불편한 상황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이상한 상황 하나를 던져놓고,

“당신이라면 이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라고 관객에게 묻는 방식입니다.

감독은 명확한 정답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이 어느 한쪽을 쉽게 선택할 수 없도록 상황을 점점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일종의 ‘도덕적 사고실험’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드림 시나리오》부터 시작된 질문

2023년 개봉한 《드림 시나리오》의 설정은 기발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대학교수 폴 매튜스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무 관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속에 폴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꿈속에 존재할 뿐입니다.

폴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현실에서 갑자기 유명인이 됩니다.

평생 인정받고 싶었던 폴은 이 상황을 은근히 즐깁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의 꿈속에 등장하는 폴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꿈속에서 폴에게 공격당하고 끔찍한 일을 경험합니다.

그 결과 현실의 폴까지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영화의 핵심 질문이 등장합니다.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꿈속에서 벌어진 일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감독도 《드림 시나리오》를 ‘책임’의 문제로 바라봤다

이것은 단순한 해석만은 아닙니다.

보글리는 《드림 시나리오》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결국 책임(responsibility)을 둘러싼 논쟁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꿈에서 경험한 일 때문에 사람들이 실제로 트라우마를 호소한다면 그것을 단순히

“꿈이잖아.”

라고 무시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폴의 입장에서는 더 억울합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의 꿈을 통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양쪽 모두를 쉽게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관객도 딜레마에 빠집니다.


《드림 시나리오》에는 감독 자신의 경험도 들어 있다

《드림 시나리오》와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감독은 16살 무렵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서 비디오 가게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사는 현실은 지루했지만 영화 속 세계는 너무나 흥미로웠고, 그때부터 자신의 머릿속과 꿈이 가장 흥미로운 장소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실제 영화 속 꿈 장면에도 자신의 경험을 활용했습니다.

밝고 평화로운 교외 지역에서 누군가에게 계속 쫓기는 악몽이나, 상대를 때리려고 하지만 주먹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 꿈 등이 감독 자신의 꿈에서 가져온 장면입니다.

즉 《드림 시나리오》는 단순히 기발한 설정에서 출발한 영화가 아니라 감독이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머릿속 세계와 현실의 경계’가 영화로 발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니콜라스 케이지였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왜 평범하고 존재감 없는 대학교수 역할에 세계에서 가장 알아보기 쉬운 배우 중 한 명인 니콜라스 케이지를 캐스팅했을까요?

바로 그 모순 자체가 영화와 연결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오랜 시간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실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와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이미지’가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보글리 역시 이 점을 캐스팅의 중요한 이유로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니콜라스 케이지의 이미지는 어느 순간 실제 니콜라스 케이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드림 시나리오》의 폴도 똑같습니다.

실제의 나

그리고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나.

두 존재가 완전히 분리됩니다.

그래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캐스팅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보여주는 일종의 메타포가 됩니다.


그리고 《더 드라마》에서 질문이 뒤집힌다

여기서 《더 드라마》를 가져오면 두 작품의 관계가 재미있어집니다.

《드림 시나리오》의 폴은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비난받습니다.

반대로 《더 드라마》의 엠마는

자신이 하려고 했지만 결국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판단받습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드림 시나리오》

나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내가 했다고 느낀다.
→ 나는 책임이 있는가?

《더 드라마》

나는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하지 않았다.
→ 나는 책임이 있는가?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결국 같은 장소에 도착합니다.

인간의 도덕적 책임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여기서 ‘트롤리 딜레마’가 떠오른다

이 두 영화를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철학적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트롤리 딜레마(Trolley Problem)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가 선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앞에 있는 다섯 사람이 죽습니다.

그런데 당신 앞에는 레버가 있습니다.

레버를 당기면 전차가 다른 선로로 이동하고 다섯 명은 살아납니다.

대신 그 선로에 있는 한 사람이 죽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 다섯 명이 죽게 둘 것인가?

아니면

직접 레버를 당겨 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다섯 명을 살릴 것인가?


트롤리 딜레마의 진짜 질문

중요한 것은 ‘5 대 1’이라는 숫자만이 아닙니다.

트롤리 딜레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이 도덕적 책임을 판단할 때 의도, 행동, 결과를 어떻게 구분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다섯 사람이 죽었습니다.

반대로 내가 직접 행동해서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결과만 계산하면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내가 직접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

는 또 다른 도덕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질문은 단순한 산수가 아닙니다.

하지 않은 것과 직접 행동한 것 사이에는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보글리의 영화와 흥미로운 연결점이 생깁니다.


다만 《더 드라마》가 ‘트롤리 딜레마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더 드라마》가 고전적인 트롤리 딜레마를 직접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감독이 《더 드라마》를 트롤리 딜레마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트롤리 딜레마는 보글리의 영화를 해석하기 좋은 철학적 렌즈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두 작품 모두 관객에게

행동하지 않은 것, 행동하려 했던 것, 실제로 행동한 것 사이에서 책임의 경계가 어디인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행동’으로 판단하는가?

《더 드라마》의 엠마에게 이 질문을 적용해 봅시다.

엠마는 10대 시절 끔찍한 범죄를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판단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실제로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현재의 엠마를 그 계획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입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정보다.”

둘 중 어느 쪽이 맞을까요?

영화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찰리와 관객을 같은 자리에 앉혀놓습니다.

그리고 선택하게 합니다.


《드림 시나리오》에서는 더 이상해진다

폴의 경우는 더욱 복잡합니다.

폴은 꿈속에서 벌어진 일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책임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경험은 어떨까요?

그들은 폴이 자신을 죽이고 공격하는 악몽을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머리로는

“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공포를 느낍니다.

영화는 여기서 아주 현대적인 문제로 확장됩니다.


실제의 나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같은 사람일까?

인터넷과 SNS 시대에는 이것이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직접 만나기 전에 검색합니다.

기사와 댓글을 보고,

SNS 게시물을 보고,

짧은 영상 하나를 보고,

때로는 밈을 통해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그 사람과 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드림 시나리오》에서 폴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꿈속에서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페르소나’가 실제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가 독립적으로 소비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여기에서 다시 의미를 갖습니다.


보글리의 영화가 불편한 이유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영화는 관객을 편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악인을 명확하게 정해주지도 않고,

누가 옳은지도 쉽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이상한 상황을 하나 만들어 놓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봅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진짜 실험 대상은 어쩌면 등장인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관객일 수 있습니다.

《드림 시나리오》를 보면서 우리는 폴이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피해자들의 악몽을 보고 나면 조금 흔들립니다.

《더 드라마》에서는 엠마가 실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범죄를 준비했는지 알게 되면서 다시 흔들립니다.

감독은 바로 그 흔들리는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드림 시나리오》와 《더 드라마》가 던지는 같은 질문

그래서 두 영화를 한 문장으로 연결한다면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하지 않은 일에도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하는가?”

《드림 시나리오》에서는

내가 하지 않았고 통제할 수도 없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더 드라마》에서는

내가 계획했지만 결국 실행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결국 관객에게 판단을 넘깁니다.


크리스토퍼 보글리가 우리에게 묻는 것

우리는 누군가를 생각보다 쉽게 판단합니다.

한 번의 행동,

과거의 실수,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심지어 그 사람이 실제로 하지 않은 일까지도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간단한 존재일까요?

생각과 행동은 같은 것일까요?

의도했지만 실행하지 않은 사람과 실제 행동한 사람에게 같은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반대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실제 고통을 만들어낸 존재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보글리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에게 레버 하나를 건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어쩌면 이것이 《드림 시나리오》에서 《더 드라마》까지 이어지는 크리스토퍼 보글리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세계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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